소설들/O오리지널

[Revolution]1

::Hyeon:: 2013. 6. 19. 05:52


아, 옛날 꿈을 꿔버렸다.

매번 정신 훈련을 하는 자신이 자각몽이나 예지몽이 아닌 평범한 꿈을 꾸었다는 것에 조금 놀라며 천천히 일어났다. 하긴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꿈이라니, 그것도 평범하진 않은 건가.

“지금이 몇 시지.”

<5시 47분 32초를 지나고 있습니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아. 정말 그러네. 더 자고 싶은데.”

<더 자면 분명히 지각하실 거니까 안 됩니다.>

“지각? 오늘 무슨 일이 있던가?”

<오늘은 아카데미에 가는 날입니다.>

“아, 아아아아. 기억났다. 고마워.”

침대에서 일어나며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한다. 침대의 옆에서 기계 팔이 뻗어 나와 자동적으로 침대의 시트를 벗기며 세탁기로 옮긴다. 하루에 한 번씩 저렇게 시트를 세탁하는 건 낭비라고 생각되지만 위생관리법에 의해 움직이는 기계에게 투덜거려봤자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 걸 깨달으며 샤워실로 들어갔다.

<한 달에 세 번밖에 안가는 날은 좀 기억해주셔도 될 것 같습니다만.>

“내가 굳이 기억하려 안 들어도 네가 다 알아서 챙겨주잖아? 괜찮아.”

입안을 헹구며 프로그램의 투덜거림에 대답한다. 어디서든 어떤 방향에서든 자신의 말이 들리고 거기에 대한 응답이 들려온다는 것은 자신을 항상 주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좋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모드를 오프로 해놓으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지만 그럼 자신의 생활을 제대로 관리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별다른 일이 없다면 작동하도록 하고 있다.

<저는 안 괜찮습니다만.>

“프로그램이 의지 하나는 확실하네. 가서 별로 하는 것도 없는데 땡땡이치면 안 되나?”

<글쎄요. 그러기엔 아마 아카데미에서 당신에게 줄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만.>

“난! 학생이라고! 그런데 왜 나에게 그런 일을 시키는 거지?”

샤워 부스에서 팔을 뻗어 버튼 몇 개를 누르면서 역으로 투덜거린다. 벽에서 기계가 나와 정교하게 온몸에 비누칠을 하고 머리를 감겨준다. 물 온도를 적당히 조절하고 서 있으려니 경고음이 조용히 들린다. 눈을 감고 입을 다물어주세요. 물을 아낀답시고 위에서 물이 한 번에 잔뜩 퍼부어진다. 정신 차리는 데는 도움 될지도 모르겠지만, 이게 도대체 어디에서 물이 아껴진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이 뒤에 젖은 수건으로 꼼꼼히 한 번 더 몸을 닦고 마른 수건과 바람이 머리와 온몸을 닦으며 말린다. 바디로션은 참아 줘. 안됩니다.

<당신이 엘리트라서 그렇겠죠.>

“시답잖은 농담인 것 같은데 그거.”

특별위원을 상징하는 하얀 제복풍의 교복을 입고 안경을 쓰면서 오늘 아침은 간단하게 해줘. 라고 말한다. 간단하게란 게 어떤 건가요. 라고 다시 물어오는 바람에 토스트와 우유라고 대답한다.

우유는 바나나 우유 없어? 없습니다. 좀 구비해두면 안될까. 성장기인 당신은 아직 한참 커야 하므로 흰 우유를 권장합니다. 엑. 싫어. 그럼 비타민제랑 영양제나 좀 제대로 섭취하시던가요. 난 내 키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당신이 지금 예전에 한참 유행하던 루저라는 건 아십니까. 알게 뭐야 난 평생 혼자 살 거라고. 역시나 시답잖은 농담을 나누며 식탁에 앉아 토스트를 집어 든다. 먹는 동안은 대화가 잠시 끊긴다.

“지금이 몇 시지?”

<몇 시일까요. 맞추시면 상품은 없습니다.>

“모르니까 물어보는 거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는데 말이지. 일단은 6시 20분쯤?”

<정말 대충 대답하시네요. 6시 24분 54초를 지나고 있습니다.>

“근사치 아니야?”

투명한 유리잔에 잔뜩 따라져있는 우유를 집어 들면서 묻는다. 무슨 대화를 하던 간에 일단 대화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인 것 같다. 요즘 사람들은 서로의 대화조차 메시지로 날려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입을 사용하는 경우는 먹는 것 이외에는 잘 없으니까.

<저는 플러스마이너스 1분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은월님의 기준이 어떤지 모르니까 그냥 근사치라고 하죠.>

“관대한 배려 고마워.”

<별말씀을. 플라잉 준비시킬까요?>

“응. 어차피 여기 있어도 할 일도 없고. 아카데미에 가서 천천히 시간이나 때울래.”

간단한 아침식사를 끝내고 양치를 대신하는 물을 마신다. 사람은 정말 귀찮은걸 싫어하는 덕분에 쓸데없는 부분에서 편리하단 생각을 거의 매일 하게 된다.

수업 준비 같은 건 거의 쓸모없는 일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플레이어만 챙기고 밖으로 나섰다. 초승달 모양의 깔끔한 흑색 플라잉이 자신이 타는 걸 기다리며 둥둥 떠 있다.

“왜 내 것은 초승달 모양일까.”

<사람의 특성에 맞춘 플라잉이니 어쩔 수 없죠. 재제작을 바라신다고 해도 같은 디자인으로 나올 겁니다. 불만이셔도 별 수 없습니다. 그래도 은월님은 어울리는 편 아닙니까.>

팔목에 부착한 플레이어에서 집안에 나오던 목소리와 똑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아니 다른 사람처럼 심플하게 타원 같은 것도 있잖아.”

<그래도 은월님은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거잖습니까. 타원은 눕지 못해서 불편하다고 하실 땐 언제고. 정 뭣하면 타원모양 플라잉을 구입해드릴까요?>

“이럴 때만 빠르지 말고 부디 바나나 우유를 구하는 데도 적극적이었으면 좋겠어.”

플라잉에 올라타 아카데미라고 짧게 목적지를 말하며 몸을 눕혔다. 겉보기엔 스틸 재질같이 보이지만 정작 올라타면 사람의 몸에 맞게 모양이 변형되며 푹신한 느낌도 들어 디자인만 빼면 자신의 플라잉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은근히 넓기도 하고. 속도가 빨라지면서 바람을 막기 위한 투명한 막이 캡슐처럼 플라잉을 둘러싼다.

<전 은월님이 좀 더 자신의 키에 적극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왜 그렇게 키에 집착하는 거야.”

웃음기를 머금은 말투로 중얼거리자 플레이어에서 당당한 말투의 대답이 돌아온다.

<이게 부모 마음이라는 겁니다.>

“우와 이젠 부모 노릇까지 하려고 하네. 보호자라는 것까진 이해하겠지만 부모는 좀 너무 나간 거 아니야?”

<은월님이 자기 자신을 제대로 챙긴다면 제가 부모도 보호자 노릇도 안하겠죠. 저에게 일거리를 너무 주지 말아주세요. 저도 바쁜 프로그램이니까요.>

“바쁜 척까지. 잘 나가네 케이토.”

<세이트입니다. 당신은 제 이 아름다운 목소리가 남성보이스로 들리시나요.>

“아니 남성 여성 할 것 없이 그냥 딱 중간인 목소린데? 카이토나 케이토나.”

<잠깐. 세이트라니까요. 카이토는 또 누굽니까. 어제 저 오프시키고 뭐봤어요?>

“야동.”

지나가는 색색의 풍경을 보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저 내역 뒤집니다? 뒤져봐 네 경로로는 안 나올걸. 이번엔 어디신데요. 내 머릿속. 뇌파 검사합니다? 우와 프라이버시 침해 쩔어. 이 주인 자식이. 이젠 프로그램이 막말까지 하네. 왜 이러세요. 요즘은 프로그램권도 있다는 거 모르시나요. 그래봤자 인권이 더 높아 덤비지 마. 그전에 미성년자가 야동 봤다는 건 뭐라 안 하는 거냐. 이미 알거 다 아는 사이에 뭘요. 범죄는 2D에서만, 아시죠? 가볍게 안부 묻듯이 던지는 말인 것 같은데 주고받는 내용이 험하다. 그래도 욱하는 기분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은 늘 이렇게 농담을 하기 때문이랄까.

등을 플라잉에 쭉 기대며 밀자 등에 맞닿아 있는 플라잉의 구조가 바뀌며 몸이 깊이 파묻어졌다.

<주무시게요?>

“응. 도착하면 깨워줘.”

<그럼 23분 33초 뒤에 깨워드리겠습니다. 편히 주무세요.>